10월 26일 광주 향교에 다녀오다.
우리민족은 왜 '충(忠)', '의(義)', '예(禮)', '지(智)' 와 같은 개념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광주 향교에서 찾아낸 단서를 기록해본다.

명륜당이란 곳은 스승과 유생들이 경전의 의미를 두고 문답(問答)하며 당대의 정책 현안을 토론하고 공론(상소 등)을 형성하던 비판적 사고와 집단지성의 플랫폼이다.
이 곳 향교에 입교하면 4년간 생계활동과는 거리를 둔 채 학문에 정진하며 국가고시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 등 고시생들이 고시원에 들어가 몇 년간 생계활동에서
명륜당을 지나면 5성현(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위패를 모신 중심 제향 건물인 대성전에 이르게 된다.


향교라는 공간은 공부를 하는 공간, 그리고 5성(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과 동국 18현(신라 2위·고려 2위·조선 14위)의 위폐를 모신 공간으로 주로 구성된다. 그래서 절제의 미학이 전체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절제의 미학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리고 일봉의 와비사비와는 다른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유학 철학 개념 중에는 예, 정명, 예치가 등장한다. 이는 항교의 전학후묘, 좌묘우학 배치, 기단과 계단의 단차, 동무 서무의 대칭 구조, 의례 동선을 통한 신체경험의 규범화로 형상화되었다고 한다. 공간 구성의 원리가 실제 건축과 공간구성에 적용된 사례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의 design.md 파일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바라봐야 할 지점이다. 지침을 주고 그에 맞게 디자인요소를 배치하는 방식은 기존 AI기반의 디자인 접근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다음으로 장식을 배제한 백자의 담대한 곡선, 사랑방 목가구(사방탁자, 서안)의 비례와 면 분활, 마당과 처마가 만드는 비움의 공간감도 중용, 안빈낙도, 극기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그 지침에 의해 만들어진 디자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용, 안빈낙도, 극기라는 정신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조금 더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아래 도표를 읽다보면 모듈러 시스템, 토폴로지라는 팬시한 디자인 키워드도 등장한다. 이는 리일분수, 이기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는 데, 이 철학은 (정여창, 이황, 이이, 이언적)에 의해 정립된 개념인 듯 하다. 이 부분도 더 심화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모듈러 개념이나 절제된 비례, 여백, 미니멀리즘을 제대로 인공지능에게 design.md 로 학습시킬 수만 있다면, 현대 조형물을 유교적 철학의 개념언어에 맞게 재구성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실현이 가능한 실험이지 않을까 싶다.

